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창신동, 때묻지 않은 추억을 선사하는 오래된 동네

송고시간2015-02-16 10:11

이 뉴스 공유하기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 조정
창신동, 때묻지 않은 추억을 선사하는 오래된 동네 - 2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 드라마에서 '미생' 장그래가 어머니와 함께 살던 양옥집, 영화 '건축학개론'의 납득이가 키스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골목길,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길라임이 살았던 낡은 연립주택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창신동이다.

창신동은 1980∼1990년대 서민 동네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가난한 동대문 직공들이 형성한 '달동네'였기 때문인지 미디어는 낡고 정체된 공간에서도 열정을 뿜어내는 청춘의 이미지를 창신동에서 찾곤 한다.

창신동의 매력은 복잡하게 이어진 골목길이다. 구불구불한 골목골목에 인생 스토리가 켜켜이 쌓여 있을 것만 같다. 추억을 되살리는 인위적인 장치가 하나도 없는데도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저마다의 추억에 잠기게 된다.

동대문 밖 낙산의 동쪽 기슭에 있는 창신동은 경사가 가파르다. 창신동을 둘러보려면 택시나 버스를 타고 낙산공원까지 올라간 후 산책을 하며 평지로 내려오는 것이 좋다. 지하철 동묘앞역에서 '종로 03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인 낙산공원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왼편 나무 계단을 내려가면 창신동이다.

서울 시내 아파트촌을 벗어나 창신동으로 들어서면 1980년대를 표방하는 드라마 세트장에 온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진형 비디오', '제일 지영 미용실'이라고 적힌 원색의 간판은 창신동의 시간을 순식간에 30년 전으로 후퇴시킨다.

창신동, 때묻지 않은 추억을 선사하는 오래된 동네 - 3

골목 여행에서는 특별한 목적지가 없다. 크고 작은 골목과 계단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곳에서는 특히 그렇다. 발길이 가는 대로 걷다 보면 정겨운 풍경들과 마주친다. 간판도 없는 작은 슈퍼마켓 유리창에는 '청소년 담배 금지', '외상 사절', '월세방 보증금 100만원, 월 15만원'이라고 적힌 빛바랜 종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옛날에는 대개의 슈퍼 주인들이 이런 방식으로 동네 주민과 소통했다. 주인 할머니는 지금까지 쭉 자신의 셋방을 종이로 광고했다고 한다.

오래된 동네를 지탱하고 있는 축대와 과거 인기 있었던 건축 방식을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다. 경사가 급한 산등성이에 집을 올리다 보니 비와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축대를 만드는 일은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창신동의 축대는 요즘 흔히 쓰는 콘크리트 거푸집 방식이 아닌 큰 돌을 쌓아 만든 것이 많다.

가정집들은 과거에 유행한 적벽돌 치장 쌓기로 대부분 마무리되어 있고, 전망이 좋은 이층집들은 화강암의 거친 면을 마감재로 이용해 매우 공을 들여 건축한 느낌을 준다.

창신동, 때묻지 않은 추억을 선사하는 오래된 동네 - 4

창신동의 배경음악은 미싱 소리다. 창신동은 소규모 봉제공장 3천여 곳이 밀집한 동대문 의류시장의 생산 기지이기도 하다. 가내수공업 형태의 공장들은 1970년대부터 평화시장 주변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골목길에 나지막이 깔린 재봉틀 소리를 들으며 창문으로 비치는 재단사의 손놀림을 보는 것은 서울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풍경이다.

옷감을 차곡차곡 쌓아 이리저리 분주히 이동하는 오토바이는 창신동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창신6가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공영주차장 옆에 ‘한땀한땀 한평공원’이라 불리는 자그마한 휴식 공간이 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한 이곳에서는 시원하게 펼쳐진 서울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아래로는 창신동의 주택가, 정면으로는 서울의 고층 빌딩, 오른쪽으로는 낙산을 둘러싼 한양도성이 하나의 그림을 이룬다. 사색을 즐기는 도심 산책가에게 딱 어울리는 공간이다.

창신동, 때묻지 않은 추억을 선사하는 오래된 동네 - 5

종로 대로변 창신동은 산등성이 창신동과 정반대의 매력을 풍긴다. 산등성이가 서민의 주거 지역이자 봉제업자들의 삶의 터전이라면 종로와 청계천 인근의 창신동은 독특한 상업 문화가 꽃핀 곳이다.

동묘앞역에서 동대문 쪽으로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른쪽에 '창신골목시장'이 나온다. 300m가량 되는 좁은 골목길 양편으로 각종 가게가 늘어서 있다. 동네 주민이 애용하던 이 작은 재래시장은 동대문 상권이 확대되면서 온종일 사람으로 북적이게 됐다. 곱창, 오돌뼈, 닭강정, 엿, 돼지갈비, 족발 가게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는 종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골목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창신골목시장 반대편에는 ‘동대문 문구·완구시장’이 있다.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시장에는 문구와 완구를 파는 점포 120여 개가 성업 중이다. 문구, 장난감, 학습교재, 체육 용품, 가방, 파티 용품 등을 소매가격보다 30% 이상 싸게 구입할 수 있어 아이를 둔 가족 단위 손님이 많다.

시장 골목으로 진입한 사람은 아이, 어른 구분할 것 없이 동심으로 빠져든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장난감이 주는 흥분을 만끽하다 보면 가슴 가득 장난감을 안고 나오는 곳이 바로 여기다.

창신동, 때묻지 않은 추억을 선사하는 오래된 동네 - 6

완구시장에서 청계천 방향으로 더 진입하면 도매 신발상이 모여 있는 신발상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관상어 문화를 보급했던 곳이자 현재까지도 수족관 용품을 유통하는 수족관 골목, 잉꼬와 앵무새 등 각종 새와 애완동물을 파는 조류 골목까지 차례로 이어진다. 청계천을 따라 신설동으로 향하면 서울풍물시장까지 볼 수 있다. 구제 의류는 물론 백 년이 넘은 농기구, LP 음반, 영화 포스터, 옛날 장난감, 딱지, 도자기 등 안 파는 게 없는 시장이다.

창신동의 골목길은 흥미롭다. 봉제 골목이라는 정체성을 수십 년간 유지하면서도 옛날의 동네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거기다 최고의 서울 풍경을 선사하고, 개성이 강한 거리 시장들은 호기심을 유발한다.

창신동 골목이 이런 모습으로 남아 있게 된 과정은 평탄치 않았다. 재개발이 무산된 이후 주민들은 동네 고유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지역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방식의 도심 재생에 합의했다.

창신동 골목은 이제 주민들 힘으로 또 다른 변화를 맞게 될 전망이다. 대도시의 세련된 번화가에서 한 발짝 물러나고 싶을 때는 창신동을 방문해 보자. 도시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관찰하는 재미가 점점 커질 동네가 바로 창신동이다.

withwit@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